섬

연혁

소안도
소재지
전남 완도군 소안면
분류
역사문화 > 역사 > 연혁
상세설명
소안도(所安島)의 역사는 저 멀리 진한, 변한, 마한의 삼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삼한 시대는 후기철기 시대에 부족국가인데 BC300년부터 기원전후까지를 말한다. 마한의 영지 50여개국 중 전남 지역은 28개국을 점유하고 있었는데 완도지역은 그 중의 점리비국(占離卑國)(또는 고비리국)에 속해 있었으므로 소안도 역시 같은 역사 안에 있었을 것이다. 삼국 시대에 완도는 백제 영지였다. 동음현(冬音縣), 오차현(烏次縣), 새금현(塞琴縣) 등 3개의 현으로 분속되어 있었는데 소안도는 완도, 노화도, 보길도와 함께 ‘새금현’에 속해 있었다. 후삼국 시대에는 892년 견훤이 전주에서 군사를 일으켜 후백제를 세웠는데 호남 땅이 그 영지가 되었으며 소안도도 그 권역에 들었다. 914년 후고구려(태봉)의 왕건이 백홍장군이 되어 수군을 거느리고 나주를 공략하여 그 이남지역을 점령하였고 소안도도 그 아래에서 관리되었다. 918년 왕건이 고려를 세우자 소안도는 자연스럽게 고려에 속하게 되었으며 그 후 19년 만에 후삼국을 통일하여 고려천하가 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완도의 모든 섬이 장흥부, 탐진현, 영암군, 해남현 등 네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각기 영속되었다. 소안도는 군외의 일부 도서와 노화, 보길과 함께 이 중 영암군에 속해 있었는데 그 역사가 1018년(고려조 현종) 이래 조선 시대까지 계속되었다. 조선 시대의 행정 구획은 고려의 5도 3계(五道三界)를 8도로 바꾸었으나 지방 제도는 그대로 운영되었다. 소안도는 이때 영암군에 속해 있다가 1896년(고종 33) 2월 3일 나주부 관할의 완도군이 만들어질 무렵 영암군에 속해 있던 현재의 면 행정 구역인 소안도, 횡간도, 자개도(당사도), 구도를 합하여 완도군의 19개면 가운데 하나로 완도군에 속하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1914년 3월 1일 전국의 행정구역 개편이 이루어졌다. 소안도는 당시 행정리 수가 17개였으며 비동리가 소재지였다. 소안도는 16세기 중반에 최초로 김해김씨(金海金氏), 동복오씨(同福 吳氏)가 월항(月項)에 입주하였는데 임진왜란을 피하여 사람들이 들어와 살았으며 이때는 섬 이름을 ‘달목도(達木島)’라 불렀다. 1866년 청산진을 설치할 때 군무와 행정을 청산진에서 관할하다가 1896년 완도군이 만들어지자 소안도는 완도군 소속이 되었다. 조선조 정조(1777-1800) 때 가혹하게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바람에 사람들의 삶이 극심하게 피폐해져 1864년에 모든 소안도 주민이 위에 자신들의 어려움을 호소하자 상부에서는 비자(榧子)에 별장을 두어 주민을 보호하기도 하였다. 소안도는 일제 강점기 때는 독립운동을 활발히 펼쳤던 곳인데 그 배경에는 송내호, 김경천 선생이 연 ‘소안사립학교’가 있다. 항일 독립 운동 본거지로서 고(故) 송내호 선생을 비롯한 많은 애국지사가 활동했으며 제2대 국회의원을 지냈던 고(故) 정남국 선생을 배출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참고자료
완도군지 편찬위원회, 『완도군지』, 학연문화사, 2010.
이재언, 『한국의 섬-완도군』, 아름다운사람들, 2015.